보도자료

[2020.06.14] [여행 & 건축 이야기] 근현대사 고스란히 안은 만리재

서울역 뒷동네로 떠나는 ‘시간여행’ 

약현성당


초고층 빌딩이 경쟁하듯 서 있는 서울역 앞쪽과 달리 서울역 뒤편엔 작은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붙어 있다. 이른바 서울역 뒷동네다.

1981년부터 약 30년간 기무사 수송대가 있었기 때문에 3층 이상의 건물은 들어서지 못했고 개발은 더뎠다. 만리재(만리동 언덕)에 자리 잡은 청파동, 서계동, 중림동, 만리동이 그 소박한 풍경을 만드는 주인공이다.

 

만리동에서 바라본 서계동, 청파동.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만리재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면 허름한 건물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쉼 없이 들린다. 가내 봉제공장이다. 남대문시장과 가깝고 임대료가 저렴해 오래전부터 봉제공장이 많다.

봉제산업 호황기를 상상해보자. 원단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는 바삐 움직였을 것이고, 일감은 몰려드는데 사람을 구하지 못한 사장님은 애가 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봉제산업은 사양길에 있고 봉제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도 찾기 어렵다.

다행히 만리시장 안에 ‘코워킹 팩토리’가 생겨 봉제장인과 패션산업 지망생을 연결해 주고 협업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made in Korea’ 택이 달린 옷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촘촘한 바느질 하나하나, 봉제 노동자들의 시간이 촘촘히 박혀 있는 듯했다.

만리동 봉제공장, 만리재 봉제공장은 대부분 이런 분위기다. 


인근 염천교에도 고집스럽게 한길만 걸어온 상인들이 모여 있다. 서울역의 탄생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 염천교 구두거리는 1970∼80년대 제화산업 중심으로 호황기를 누렸다. 굳이어 제화, 가르방 댄스화, 코리아 제화…. 복고풍 간판이 이어지는 거리엔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다. 기왕 왔으니 염천교표 수제화를 한 켤레 사는 쇼핑의 재미도 느꼈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은 성당과 아파트

길을 건너면 ‘약현(藥峴)’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약초밭이 있는 작은 언덕이라는 뜻. 붉은 벽돌로 지은 아담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식 벽돌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약현성당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영화나 드라마 배경으로 자주 나왔다.

성당 바로 옆엔 언덕길을 따라 길게 휘어져 있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성요셉 아파트는 1971년 약현성당이 성도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여전히 1층은 상업시설, 2층부터 6층까지는 주거시설로 쓰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 성요셉아파트. 

수십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중엔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방앗간도 있다. 고소한 냄새는 청년 사장님이 차린 ‘커피방앗간’이라는 카페에서도 흘러나온다. 커피 볶는 집으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오래된 가게와 새로 생긴 가게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풍경은 도시의 삭막함을 잊게 한다.

성요셉아파트, 커피방앗간 


△전통과 젊음이 공존하는 만리시장

만리고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만리시장은 1968년에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규모가 꽤 큰 시장이었다. 적벽돌 건물 안엔 용인고추참기름, 풍화정육점 등 40년 넘게 만리시장을 지켜온 가게들이 많다.

예전처럼 왁자지껄한 시장 풍경은 아니지만, 청년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생기면서 활력이 더해지고 있다. 생과일주스 가게, 주문 제작 빵집뿐 아니라 전통시장에 생소한 메뉴인 퀘사디아를 파는 가게도 있다.


△백년가게 

성우이용원 

만리시장 인근에서 ‘성우이용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27년부터 한자리에서 3대째 운영하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툭 치면 쓰러질듯한 낡은 건물이었지만 태풍으로 건물 일부분이 파손되면서 외부 수리를 마쳤다. 사연이 많아 보이던 허름한 건물은 사라졌지만, 주인장의 솜씨는 변하지 않았다고 하니, 시간 너머의 손길이 궁금하다면 방문해보자.

또 하나. 서계동에서는 ‘개미수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려 한 세기에 걸쳐 5대째 운영 중인 개미수퍼 앞엔 수백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사장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좀처럼 발길 닿을 일 없던 서울역 뒷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속속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작은 변화

‘서울로 7017’이 생기면서 만리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낡은 집들과 어색한 동거를 하는 모습은 도시개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서계동에선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서울로 7017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오래된 건축물을 단장해 이색공간으로 만든 곳도 여럿이다. 공유 부엌·서가인 ‘감나무집’, 마을 카페 ‘청파언덕집’, 문화예술공간 ‘은행나무집’은 도시여행자와 주민들에게 작은 쉼터이자 소통의 장이 되어준다.

서울역 서부교차로에서 만리재로 오르는 150m 남짓한 길은 이 일대에서 가장 세련된 구역이다. 카페와 와인바, 수제맥주집, 레스토랑이 이어지는 풍경은 유럽의 골목길처럼 아기자기하다. 원래 점심시간이면 대기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북적거리는 풍경은 사라졌다. ‘VERY(베리)’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은 1910년 서양식 병원으로 사용된 건물을 그대로 쓰는 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1900년 문을 연 서울역과 역사를 거의 함께하는 셈이다.


△역사의 향기가 흐르는 공원

만리재에는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공원이 두 곳 있다.

손기정기념공원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거머쥔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미니 스타디움에서 러닝 트랙을 뛰어보는 것은 이 공원의 의미를 가장 잘 느껴보는 방법이다. 대왕참나무는 금메달 수상 당시 히틀러가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기정 동상

효창공원은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비가 묻힌 효창원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왕족의 묘지였으나 일제강점기엔 일본군의 야영지로 사용됐던 서글픈 역사가 있다.

지금은 백범 김구 묘역과 독립운동가들의 영정을 모신,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다사다난한 근현대사를 모두 안고 있는 효창공원에서 6월의 의미가 깊어진다.

효창공원

글ㆍ사진=김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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