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2021.03.18] 따스한 서울 여행-솔솔 젊은 바람 부는 남촌, 회현동 산책

2021-03-18

이번 여행지는 남산 자락 아래 고요한 선비의 마을, 회현동이다. 조선 시대부터 12정승을 낸 이력에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이름 풀이부터 근사하다. 명동과 남대문시장에서 살짝 벗어나 도심이면서도 골목골목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언덕배기에 젊은 기운이 조금씩 퍼져 가는 회현동을 걸어 봤다. 


언덕이 가파르고 골목이 좁은동네. 남산 아래 조용한 선비골, 회현동

요즘 요식업계에서 화제가 되는 식당이 하나 있다. 압구정 로데오 한가운데서 이자카야의 전성시대를 불러왔던 이치에의 김건 셰프가 남산 밑에 연 회현식당(이치에 회현)이다. 점심에는 제철 생선을 이용한 정식을 내고, 저녁에는 사케나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안주 메뉴를 낸다. 1월 말에 문을 열었는데,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몇 주 만에 금세 핫 플레이스가 되어 예약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회현식당이라는 이름을 듣자 ‘왜 회현동?’이란 의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1987년과 2013년, 각각 3년씩 두 번의 직장 생활을 했던 곳이라 회현동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이 잘나가는 셰프가 변변한 맛집이 거의 없는 남산 자락에 식당을 열었다는 게 의외였다. 그래서 식당 가는 길에 오랜만에 회현동을 둘러보았다. 맘먹고 반나절 동안 회현동의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며 얻은 결론은, 예로부터 기운이 좋은 땅과 젊은 문화인들의 노력이 합쳐져 동네가 새로운 회현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잘나가는 셰프는 벌써 그 기운을 보고 터를 잡았던 거다.

오랜만에 걸어 본 회현동은 여전히 좁고 가파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곳이었다. 좁은 골목이지만 최대한 거리를 확보해서 오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이고, 구석구석 담장에는 근사한 벽화와 트릭 아트 작품이 그려져 있어 눈이 즐거웠다. 오래된 건물들이 적절하게 보수를 해 기존 건물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데 어색함이 없고, 그동안 가려지고 숨겨져 있던 문화 유적지에 관한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500년 동안 이어져 온 ‘어진 사람들의 마을’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회현동에 처음 온 사람들은 다소 숨이 차고, 길을 헤맬 수도 있지만 헛걸음하면서도 두어 시간이면 너끈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동네다.


 ▶회현동 산책의 시작은 500년 된 은행나무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프랑스 어학원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알리앙스 프랑세즈

 이름부터 ‘어질고 현명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의 회현동會賢洞은 조선 초기에 한성부를 5부 52방의 행정 구역으로 나눌 때 서울 남쪽의 ‘호현방好賢房’으로 부르던 지역이다. 이때부터 ‘어질 현’자가 들어 있으니 이 터가 어질고 현명함과 관련이 있는 것은 500년을 이어오는 사실이다. 선조 때는 공물세로 현물 대신 대동미와 포·전을 받기 위해 설립한 관청의 창고인 선혜청宣惠廳이 있던 곳이라 해서 남쪽의 창고란 뜻으로 ‘남창동南倉洞’이라고도 불렀으나 대체로 경복궁의 남쪽 목멱산 자락인 데다가 남인南人들이 모여 살았기에 ‘남촌南村’ 또는 ‘선비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동래 정 씨의 선조로 조선 전기 삼정승을 두루 역임한 정광필이 살았고, 후기에는 김홍도의 스승으로 유명한 강세황 등이 살아 정승과 문예의 기운이 강했던 회현동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일본인의 요정이나 유곽이 들어서면서 동네 분위기가 변했다. 광복 이후에 수많은 적산 가옥들은 남대문시장에 볼일 보러 오는 이들을 위한 여관으로 변했고 이 분위기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남대문시장이 의류 도매상으로 번창하면서 회현동에는 원자재인 섬유와 부자재를 공급하는 물류업체나 가내 수공업 규모의 봉제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도 회현동 곳곳에는 간판에 ‘주름’, ‘마무리’라는 뜻의 ‘마도메’, ‘단추’, ‘미싱’ 등을 써 붙인 곳이 눈에 띈다. 40년째 여전히 회현동 입구에 건재한 프랑스 어학원인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프랑스어를 배우러 오가는 이들의 발길도 부산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보러 오는 젊은 관광객들의 숙소로 회현동이 각광받기 시작해 기존의 여관들은 수리를 해서 현대적 분위기의 게스트 하우스로 모습을 바꿨다. 서울의 도심인 명동이 다시 살아나면서 회현동은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 된 것이다. 아침에는 트렁크를 끌고 내려오는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고, 오후에는 명동에서 장사를 하러 가는 포장마차들이 줄을 이었다.

수십 년을 변함없이 이 언덕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지난 몇 년이다. 글린트의 김범상 대표가 남산 자락의 오래된 제약회사 건물을 매입해서 ‘피크닉Piknic’이란 이름의 근사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재스퍼 모리슨, 페터 팝스트 등 유명한 문화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를 유치하면서 회현동에 젊은 문화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 모았다. 이후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도시 재생 사업’의 대상으로 중림동과 서계동, 회현동이 지목되었다. 도시가 노쇠해 가면서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서울 도심의 의미 있는 공간들을 새롭게 부각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로, 주민 공동 이용 시설을 확충하면서 문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앵커 시설이 회현동에 설치되었다. 기존 적산 가옥을 매입해 공공 건축가들이 참여해서 리모델링과 신축으로 도시형 마을 회관인 ‘회현사랑채’와 주민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스페셜티 마을 카페인 ‘계단집’도 만들었다.

‘누들로드’로 유명한 이욱정 PD는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성공한 도시 재생 사례를 보면서 도시 재생이 단지 오래된 건축물을 개보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자리를 재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요리’를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회현동에 쿠킹 스튜디오와 음식 관련 교육과 체험 공간인 ‘검벽돌집’이 세워졌다. 이욱정 PD는 코로나로 동네 식당들이 불황을 맞자 식당 주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각자 잘하는 반찬 하나씩을 준비해서 함께 도시락을 만드는 ‘남촌상인회도시락’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작년 가을, 회현은행나무 축제 때는 하루에 150인분의 매출을 올렸고, 이후 명동성당에서 노숙인에게 줄 도시락 단체 주문으로 이어져 회현동 인근 식당 주인들은 물론이고, 재료를 공급하는 쌀가게와 정육점 등도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서울시의 도시 재생 정책과 문화 콘텐츠 제안자들, 회현동 주민들에 의해 회현동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의 1번과 2번 출구는 우리은행 본점으로 향하고, 5번과 6번은 남대문시장, 7번은 신세계백화점으로 연결된다. 그동안 남대문시장의 전용 역으로 여겨지던 회현역 출구 중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적었던 3번과 4번 출구에 젊은 문화 애호가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당연히 일부에서는 회현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한다. 실제로 봄이 오면서 언덕 곳곳에 소규모로 개보수하는 공사 현장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회현동은 언덕이 가파르고 차량 두 대가 오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좁은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나 옷가게들이 기존 건물을 모두 부수고 새 건물을 짓고 들어오기 어려운 지형적 조건을 갖고 있다.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도 있겠으나 50년 이상 이곳에 사는 분들은 그런 변화보다는 일상에 방해받지 않게 구경 오는 사람들이 조용히 다니기만을 원할 뿐이다. 


회현아파트 앞 벽을 장식한 ‘책가도’


▶청운의 길 끝에서 만나는 회현아파트 

회현동 산책의 시작은 회현동의 한쪽 끝에 자리한 우리은행 본점에서 시작한다. 우리은행 본점 옆 퇴계로12길 쪽 우리은행 담장에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1462~1538)의 집터였다는 표지석이 있는데 그 옆에 500년 수령의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정광필의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 “서대犀帶 열두 개를 은행나무에 걸게 되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서대’란 정승만 찰 수 있는 귀한 허리띠인데, 결국 정광필 가문에서 12명의 정승이 나왔으니 그 은행나무가 영험한 기운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그런 과거의 공적을 무심한 현대인들이 알기나 하겠냐는 듯 표표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는 봄부터 여름까지 무성한 초록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다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500년을 한결같이 회현동 입구를 지키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회현동에서 은행나무축제를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현동에는 큰 줄기 길이 서너 개 있다. 가장 큰 길은 이 은행나무부터 시작해서 퇴계로12길을 따라 가다가 남산 바로 아래 회현제2시민아파트까지 구부러져 올라가는 청운의 길이다. 지도를 보면 마치 용이 용트림을 하듯 한 번 휘어진 모양새다. 퇴계로12길에서 남산 자락까지 내처 올라가면 중구회현체육센터가 나오고, 그 바로 옆에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던 표암 강세황의 집터가 나온다. 이곳은 현재 구립회현경로당인데, 조만간 구립 문화 공간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청운의 길에서 왼쪽 힐하우스호텔 방향 소공로3길을 따라가면 그 길은 소나무숲길이다. 힐하우스호텔 앞 계단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앉을 수 있는 ‘임금의 자리’가 트릭 아트로 그려져 있다. 12정승을 배출한 합격 명당이니 어좌에 앉아 왕이 된 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보라는 것. 소공로3길을 조금 더 따라 올라가면 삼풍아파트 못 미쳐서 윤주한의원(소공로3길 29-4) 담장에 그려진 트릭 아트 ‘선비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묵과 벼루 그리고 화선지 위에 매난국죽 사군자가 그려져 있다. 팔을 내밀면 붓을 잡고 내가 사군자를 치는 듯한 착시 현상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오른쪽 계단 길로 올라가면 남산3호터널 위를 지나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 왼쪽의 퇴계로12가길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회현어린이집 못 미쳐 담장에 그려진 샛노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이는 정광필의 손자 정유길의 문집 『임당유고』에 수록된 시와 함께 멋진 시화벽을 이룬다.

‘그대의 한가한 성미 세상사 다 버리고 / 남산으로 찾아 들어 오솔길 넓혔네 / 바위와 골짜기 형편 따라 집 지으니 / 앉으나 서나 모두가 못이요 정자라네’

여기서 퇴계로8길로 꺾어져 오르면 민화에서 많이 보는 책상과 책이 그려진 ‘책가도’ 벽화가 나오고 그 앞에 허름한 외관의 회현제2시민아파트(퇴계로8길 101)가 눈에 들어온다. 회현시민아파트는 1970년 5월에 일대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지하 1층 지상 10층 높이로 300가구가 입주할 수 있게 지은 1세대 시민 아파트였다. 1937년에 지은 서대문구 충정아파트와 1972년에 지은 주상 복합형 서소문아파트와 함께 현존하는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로 철거와 보존의 논의가 분분한 곳이지만, 당시로서는 중앙난방에 세대별로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된 고급 아파트였다. 남산의 경사면을 그대로 살려 짓고 1층과 6층, 7층 출입구를 따로 두어 구름다리 출입구형을 만든 것도 당시로서는 획기적 건축이었다. 건축가들에게는 중요한 사료의 가치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옥상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시 재생 사업의 앵커, ‘계단집’과 ‘회현사랑채’

회현동 주민의 커뮤니티 시설 ‘회현사랑채’, 남산의 백범광장과 한양도성 성곽길 남산 구간

회현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남산의 드라이브 코스인 소파로가 나온다. 길을 건너면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남산의 백범광장이다. 넓은 잔디밭에서 뛰어놀 수도 있고, 광장을 건너가면 서울 한양도성길3코스(남산구간)의 성곽길이 이어진다. 다시 회현아파트로 내려와서 퇴계로8길로 들어서면 여기서부터 저잣거리길이다. 이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남대문시장이 나오니 저잣거리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정화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 바로 아래쪽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적산 가옥이 산뜻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935년에 지은 일본식 목조 주택을 개조해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시설로 재탄생 한 회현사랑채(퇴계로8길 65-12)다. 이곳에서 주민들이 모여 지역 공동체 성장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퇴계로8길이 이어지면서 내려오다 보면 ‘남산의 사계절’, ‘샬롬’, ‘명희네밥상’, ‘이모네’ 등 작은 식당들이 드문드문 문을 열고 있다. 회현동주민센터(퇴계로8길 46) 앞이다. 주민센터 담장 앞에도 화려한 트릭 아트가 하나 그려져 있다. 벽화 제목은 ‘등용문’이다. 중국 전설 중 ‘용문이라는 물살이 험한 협곡이 있는데 물고기가 어렵게 거슬러 올라가 협곡에 오르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난을 이기고 실력을 인정받는 과정 또는 시험을 ‘등용문’이라 표현한다. 12정승이 태어난 회현동이 입신 출세의 명당임을 표현하고자 그려 놓은 듯하다.

퇴계로4길 쪽으로 내려가면 남대문게스트하우스 서울(퇴계로4길 49) 앞에 포졸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벽화가 또 나온다. 이 제목은 ‘장원 급제’. 벽화는 비어 있지만 그 우산 아래 서면 내가 장원 급제한 듯한 모양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시 회현동주민센터로 돌아가 퇴계로8길과 4길 교차로에 서면 성도교회 담장에 그려진 분홍빛 남산옛길 지도 벽화를 볼 수 있다. 이곳에 벽화와 트릭 아트들이 모여 있어 사진 찍으러 오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난다.

퇴계로4길로 나와서 퇴계로6길 방향 오르막길을 보면 오른쪽에는 오래된 석조 건물의 일신교회(퇴계로6길 36)가, 왼쪽에는 ‘계단집(퇴계로6길 35)’이라 쓰인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서울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앵커 시설 중 하나인 마을카페다. 일본식 목조주택을 리모델링해서 합판 마감에 바닥이 다다미로 된 카페로 만들어, 주민 바리스타들이 운영하고 있다. 나무 상자에 담아준 음료와 디저트를 들고 2층으로 올라와 다다미 바닥에 앉아서 즐겨도 되고, 창가의 바 테이블에 앉아 고색창연한 일신교회의 돌벽을 보며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도 있어 회현동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피크닉(Piknic)(퇴계로 6가길 30). 전시 기간 중에는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관람객이 많지만, 전시가 없을 때는 1층 카페 피크닉과 2층의 레스토랑 제로컴플렉스가 붐비지 않아서 좋다. 카페 피크닉은 화려한 샹들리에를 줄줄이 걸고, 긴 테이블 양 옆에 재스퍼 모리슨의 트라토리아 체어가 도열한 풍경이 근사해서 사랑받는 공간이다. 회현동 산책을 마치고 긴 테이블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 도심 속에서 즐기는 피크닉 같은 휴식을 주는 곳이다. 


▶삶의 에너지가 솟아나는 시장과 백화점, 지하상가

회현동은 서울로의 출발점이다. 큼직한 나무들 사이에 군데군데 쉴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서울로가게’도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서울역 너무 마포의 빌딩숲까지 한눈에 보인다.


회현동을 돌아보고 나서 남대문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서울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아직 나무가 무성하지는 않지만 서울로에 올라서면 멀리 서울역의 ‘문화역서울284’ 건물의 녹색 돔 지붕 뒤로 멀리 마포 쪽으로 펼쳐지는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여 눈이 시원해진다. 군데군데 앉아서 쉴 수 있는 곳도 많고, 서울로의 아트 상품을 파는 ‘서울로가게’에 들러 서울의 홍보 자료도 보고 예쁜 스티커도 구입할 수 있다.

조용한 회현동 산책 후 남대문시장에 가면 갑자기 정신이 하나도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장이니까 당연한 일. 사람들 속에 묻혀서 물건들 구경하며 걸어가다 보면 절로 삶의 에너지가 묻어 오는 느낌이다. 시장 입구의 국수골목에 들어가 살가운 아주머니들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말아주는 칼국수 한 그릇에 보리밥과 냉면 등 세 가지를 다 먹어도 6000원이다. 평소에 사려고 벼르던 주방용품이나 액세서리 한두 개 사서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혹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면 신세계백화점과 회현지하쇼핑센터를 추천한다. 신세계백화점은 1930년부터 있던 근대식 석조 건물의 외관과 내부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최근에는 현대 미술 작품들을 곳곳에 비치해 갤러리 역할도 한다. 90년의 역사를 지닌 중앙 석조 계단 위에 설치된 서도호 작가의 작품과 6층 벽에 그려진 솔루잇의 벽화, 그리고 매장들 사이사이에 현대 미술 작품이 무수히 설치되어 있다. 특히 6층 옥상 야외 조각공원에는 헨리 무어, 칼더, 미로, 루이스 부르주아 등 세계적 작가들의 조각품들을 상설 전시한다.

백화점 지하로 내려오면 회현지하쇼핑센터로 이어진다. 우표와 화폐, LP와 카메라 가게들이 가득했던 예전에 비하면 전문 매장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은 오랜 단골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요즘은 개성 있는 빈티지 가구와 옷, 소품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묵향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회현동 입구의 은행나무부터 가파른 언덕길로 이어지고 구부러지며 회현동을 구경했다. 푸르른 남산을 등 뒤에 업고, 나지막한 건물들로 층을 이룬 집들은 남대문시장 앞까지 이어진다. 골목 구석구석에선 여전히 재봉틀 소리도 배어 나오고, 근대 문화 유산을 리뉴얼한 도시 재생 사업으로 회현동 주민의 일터가 된 앵커 시설들을 찾아보는 젊은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은행 본점 앞의 은행나무부터 피크닉 주차장을 내려다보는 느티나무까지 걷다 보면 강남이나 신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삶의 터를 가꿔 온 이들의 정겨운 일상의 내음과 풍경이 쉽게 눈에 띈다. 굳이 먼 길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숨소리를 새롭게 느껴 보는 것.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산들거리는 봄바람 맞으며 회현동 산책에 나서시라고 재삼 권하는 이유다.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1호 (21.03.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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